존재론: 세계들에 관한 이야기

한남대 수학과 김상배교수

많은 세계들 세상에는 많은 세계가 있다. 소설가들은 소설 하나에 하나씩의 세계를 만들어 낸다. 해리포터, 나니아연대기, 스타워즈 등 시리즈물을 보면 그 안에 거대한 세계를 창조해 놓은 것을 알 수 있다. 관점에 따라서는 그런 세계를 창조했다고도 할 수 있고 발견했다고도 할 수 있다. 소설가들이 만든 세계들은 정교함과 객관성이 부족할 수가 있다. 허구를 만들다 보면 논리에 맞지 않거나 필연성이 떨어질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발견하더라도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독톡한 세계가 두 개 있는데, 그것은 존재의 교과서인 형이하학적 물리세계와 추상적 존재의 교과서인 형이상학적 수학세계이다. 물리세계의 많은 법칙들이 수학의 언어를 빌어 표현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정확한 표현이거나 유일한 표현은 아니고, 근사적이거나 비유적일 표현일 것이다. 수학은 물리세계와는 엄연히 구별되어 존재하는 별개의 세계이다. 물리세계는 수학이라는 언어의 도움 없이도 보통의 언어로도 묘사될 수 있다. 물론 간결하게 하기는 어렵고 엄청나게 길게 표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수학에서 수는 매우 독특한 개체이기는 하지만, 수학에는 수 아닌 다른 개체들이 무한히 많이 있다. 현대 사람들이 이해하는 수학의 세계는 추상적인 구조들의 세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수학'이라는 명칭보다 '추상구조학'이 더 어울리는 명칭 일지도 모른다. 수학자들은 정의라는 재료와 공리라는 구조와 논리라는 도구를 써서 새로운 구조물을 창조하기도 하고 그 구조물 사이에 법칙을 발견하고 그 법칙을 증명하기도 한다. 천재들은 인간들을 전혀 새로운 수학의 신세계로 안내하기도 한다. 창조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만들어 놓은 세계를 발견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후에 사람들을 가장 흥미롭게 하는 것은 새로운 세계로의 탐험이다. 세계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영화를 보러 가고, 드라마에 빠지고, 소설 삼매경에 빠진다. 음악과 미술, 댄스 등 예술의 세계도 있다. 두뇌의 구조상 물리의 세계와 수학의 세계라는 환상의 세계로 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철학과 학문의 시작 채집이나 유목 생활을 끝내고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모여서 살게 되었다. 먹을 것을 위하여 직접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시간이 남은 사람들은 세상에 대하여 생각에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의 공간적인 끝은 어디인가? 세상의 시간적 시작과 끝은 어디인가? 시간이란 무엇인가? 생명은 어떻게 생겨났나? 생명이란 무엇인가? 무생물과의 경계는 어떻게 되는가? 삶과 죽음의 경계란 있는 것인가? 명사로 이름 지어진 어떤 사물은 다른 것과 구별되는 의미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하필 이 육체에 내재하면서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통하여 세상을 인식하고 기억을 쌓아가고 있는가? 육체에 머물기 전에 나는 어디에 있었는가? 나는 60조 개의 세포의 집합이 아니고 하나의 이름을 가진 어떤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수면내시경을 하는 동안 활동했던 그 시각의 나는 기억에 없음으로 내가 아닌 것은 아닌가? 전지, 전능, 편재한다는 하나님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물질의 근원 물리학은 끊임없이 물질의 근원을 찾아왔다. 분자에서 원자로, 원자에서, 양성자, 중성자와 전자로, 양성자와 중성자에서 쿼크와 기타 소립자로 지식이 확장되었다. 최근에는 물질의 기본 요소가, 너무나 작아서 실험으로 확인하기에 불가능한, 10의 31제곱분의 1 미터(원자의 크기는 10의 10제곱 분의 1 미터) 크기의 1차원 끈이라는 이론이 제시되고 있다. 소립자들은 그 끈이 11차원의 공간 속에서 진동하는 것들이라고 한다. 물질 본연의 특성으로 여겼던 ‘질량’도 물질 입자가 힉스 입자라는 것과 상호작용하여 생긴다고 한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아무것도 없는 진공에서는 끊임없이 물질과 반물질의 입자가 같이 생겨나기(쌍생)도 하고 같이 소멸(쌍멸)하기도 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물질은 단순한 형이하학적인 알갱이가 아니고, 형이상학적인 어떤 것이라 생각이 강하게 든다.

공간의 본질 공간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은 공간이란 끝없이 사방, 팔방으로 뻗어 있는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차원을 낮추어 2차원의 평면을 생각해 보자. 2차원처럼 보이는 면들에는 끝없이 펼쳐진 평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체적인 표면이 도넛과 같이 생겼거나, 공의 표면처럼 둥글게 굽어 있어 면적이 유한한 표면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구의 표면을 생각해 보자. 지구 표면은 생각보다 워낙 큰 규모라서 우리가 서 있는 땅이 둥근 지구 표면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모르고 평평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마찬가지로 3차원 공간에 떠 있는 별과 은하들은 워낙 거대한 규모를 보이고 있으므로 대부분의 사람은 3차원 공간이 끝없이 사방, 팔방으로 뻗어 있을 거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사는 3차원 공간이 휘어져서 4차원적 공이나 4차원적 도넛 모양의 일부이며 전체 부피가 유한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질량은 공간을 휘게 한다고 한다. 태양 뒤에 살짝 숨어서 보이지 않아야 하는 별이 실제로 관측됨으로써, 위 사실이 검증되었다. 우주 공간에는 공기가 없음으로 공기의 굴절률 차이로 만들어지는 신기루와는 분명히 다른 현상이다. 공간은 4차원뿐만 아니라 앞 문단에서 말한 것처럼 심지어 11차원도 될 수 있다. 그런데 왜 하필 11차원인가? 더 나아가, 무한차원이면 안 되는가? 형이상학적 세계인 수학에서는 무한차원 중에서도 크기가 다른 여러 종류의 공간들이 있다.

시간의 본질 시간은 무엇일까? 우주 시간의 시작에 대하여 빅뱅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하나님이 창조했다고도 하며, 하나님이 빅뱅을 일으켰다고도 한다. 사람들은 시간의 개념을 잘못 생각하여 꼭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곤 한다. 그럼 빅뱅 이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나? 창조 전에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 끊임없이 흘러가는 것이라는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하나님까지도 시간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하기 쉽다. 시간을 어떻게 측정하는가? 보통 물질의 공간적인 변화로 측정한다. 그렇다면 물질의 공간적인 변화가 없다면 시간이 흘러가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 아닐까? 영화에서도 주인공이 시간을 통과할 때 주위 사물은 정지하고 있다. 시간이 항상 흘러가는 무엇이라면, 정지하고 있는 동안도 시간이 흘러야 하지만, 영화에서는 사물들의 공간이동이 없는 것으로 시간의 정지를 묘사하고 있다. 즉 시간은 진짜로 흘러가는 무엇이 아니라 물질의 공간적 변화로 볼 수도 있다. 실제인 빛에 의해 실제가 아닌 그림자가 생기는 것처럼, 물질의 공간적 변화에 따른 결과로서 실제가 아닌 시간이 생긴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의 동적인 것을 무한 시간 전에서 무한 시간 후까지의 집합으로 보면 그것은 정적인 것이 된다. 빅뱅 이전에는 한 점이므로 입자와 입자 사이에 위치가 없고, 그 때문에 위치의 변화도 없다. 공간이 생기면 위치의 변화가 있게 되고, 비로소 시간이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상대성이론에서도 공간 안의 이동 속도에 따라 시간이 줄어든다고 한다. 시간이 공간과 독립적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간을 이해하는 다른 방법으로 소설 비유가 있다. 하나님은 세상이라는 소설을 갖고 있고, 소설 안에서는 시간이 흘러 사물들의 변화와 사건들이 있지만, 소설 밖에서 보면 소설은 정적인 정보의 집합체일 뿐 시간이 흘러가지는 않는다.

존재의 본질 사람들이 흔히 당연히 있다고 믿는 존재라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여 보자. 사람들은 백두산은 중국과 북한 사이 어디쯤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백두산의 경계는 어디인가? 산의 경계란 모호한 것이며 사실 백두산이란 것이 정확히 있는 것이 아니라. 백두산이라는 개념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을 뿐이다. 사실 무생물이란 것은 모두 이런 식이다. 입자 알갱이들의 모임이 있기는 하지만, 진짜로 명사로 이름 지을 수 있는 그 집합체로서의 뭐가 있는 것이 아니며, 사람들의 머릿속에 어떤 개념이 있을 뿐이다. 사막에 컵이 하나 떨어져 있는데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고, 그 컵에는 음료가 담겨 본 적이 없다. 그런 경우 그것을 ‘컵’라고 말할 수 있을까? 원래의 목적에 따라 쓰이지 않으면 컵이 아니고 그냥 원자들의 덩어리일 뿐이다. 끊임없이 물질이 들어가고 나오는 생물은 어느 때라도 변하지 않은 순간이 없다. 생물은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시스템으로, 우주 전체 시간에 걸쳐 우주의 일부로서 구성하는 알갱이들의 집합체인데, 그 계속 변화하는 집합체를 하나의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전체 시간 속의 변화하는 입자 집합체의 시스템은 어떤 구체적 존재가 아니고, 머릿속에서 있는 개념이나 관념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지구상의 생명체라는 것은 홀로 존재할 수는 없고 지구 생태계 안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지구는 우리 은하계의 일부이며 우리 은하는 어떤 초은하단의 일부라고도 한다. 그 초은하단은 또 다른 것의 일부일 것이다. 거꾸로 생명체는 또한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세포는 여러 분자와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 입자는 작은 끈의 진동이며, 그 끈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이렇듯 우리가 존재라고 부르는 것은 항상 다른 하위 존재들로 구성되고 동시에 상위 존재들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데 과연 독자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존재라는 것은 (사람의) 지성에 의해 명사로 이름 지어질 때 관념 속에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존재는 관념이다. 관념은 인식해 주는 지성이 있어야 성립한다. 모든 존재는 '하나'님이라는 (근원적) 지성에 의해 인식될 때 비로소 존재로서 의미를 있는 것은 아닐까?

하나됨과 하나님 하나님은 모든 존재를 인식해 준다. 즉 이름을 불러 준다. 무신론자의 경우는 하나님을 존재의 제일 원인자로 보면 되겠다. 유신론자들은 더 나아가 하나님이 포함하고 있는 인격적인 부분에 주목하여 하나님과 인격적인 소통하기도 한다. 우리 주위에 생명들이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생명들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하나님이 시간에 따라 동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나님은 변화가 없고 정적이다. 하나님은 시공간 안에 있지 않고 본질적으로 변하는 것도 없다. 하나님은 이미 시간의 시작부터 끝까지의 모든 정보를 다 갖고 있다. 존재의 제일 원인자라서 모든 물질 입자와 모든 시스템과 개념과 관념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 하나님은 세상이라는 소설을 갖고 있고, 소설 안의 주인공들은 하나님이 인정해 주는 ‘존재’들이다. 하나님은 존재가 아니고 존재를 초월한다. 사람들은 존재 아닌 초월자를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람들은 하나님도 존재로 보려고 하고, 특히 인간과 비슷하다고 간주하고, 인간을 닮은 우상을 만들어 낸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얼굴을 보기를 원한다. 소리는 물질의 진동에 의한 공기의 진동이고, 보인다는 것은 빛을 반사하는 물질로 되어 있다는 뜻이다. 물질의 근원인 하나님을 물질로 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물론 모든 존재의 근원인 하나님이 원한다면 빛과 소리를 사용하여 얼굴과 음성을 만드는 일은 가능할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입자와 에너지는 물론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포함하며 사람들의 생각 속에 있는 모든 관념들을 포함한다. 모든 것의 원천인 하나님 안에는 우리가 좋아하는 부모와 고향과 하나 됨도 있다. ‘하나 됨’은 ‘사랑’이라는 낱말과 동일한 것일 수가 있다. 하나가 되면 타자가 바로 자기이다. 자기가 된 타자를 보호하고 가꾸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모든 존재란 독립된 것이 아니고, 다른 존재의 일부를 이루고 있으며, 전체가 '하나'이다. '하나'님은 전체를 포함한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존재라는 것은 관념의 세계 안에서 개별적인 시스템으로 여길 수도 있고, 하나님에 포함되는 전체 시스템의 일부로 간주할 수도 있겠다. 사람에게서 나와서 사람과 소통하는 존재를 ‘아들’ 이나 ‘자녀’로 표현하는 것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하나님과 소통하는 존재를 ‘하나님의 아들’ 또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나의 정체성 존재론적 문제에 있어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나’이다. 전체중 일부로서 객관적인 나로만 관찰할 수 있으면 문제가 없을 텐데, '나'라는 통로를 통해 세상이 인식된다는 점이 이상하다. 여러분이 영화를 보고 있는데, 문득 그 영화 안에 영화관에 앉아 있는 내가 보인다면 얼마나 이상한 상황일까? 공간적으로 볼 때, 왜 나는 광대한 우주 안에 먼지보다 작은 지구라는 곳에 있으며, 하필 이 육체 속에 있어서, 다른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위상을 가졌는지 정말 이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시간상으로 나는 하필 21세기를 살고 있는지? 그렇다면 나는 독립된 존재가 아니고, 실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있는 하나님의 일부이며 그 하나님의 일부는 21세기에 살짝 세상을 인식하고 있는 상태가 아닐까? 하나님은 수많은 ‘나’들을 통하여 세상을 인식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전체중 일부라는 점을 아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개체로 독립하려고 할 때 비극은 시작된다. 타자로 간주하는 것과의 갈등이 시작되고, 고독함과 외로움이 시작된다. 내가 결코 전체를 이해할 수 없지만, 조금이나마 이해의 정도를 넓히려면 하나님의 일부 또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잘 자각하고 하나님과 잘 소통해야 할 것 같다.